동유럽의 작은나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다운타운은 골목으로 연결된 커다란 미로처럼 되어있으며 하늘에서 보면 마치 누가 미로찾기 퀴즈를 낸 것 처럼 보이는 곳입니다. 특히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시간즈음 특히 어둠이 짙게 깔린 동유럽 골목 분위기가 좋아서 이곳을 종종 찾곤하죠.
그리고 이곳에는 지난 9년간 내 테니스 코치이자 슬로바키아 친구인 마틴이 5년 전부터 와인바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는 그곳을 아지트 삼아 혹은 단골술집 삼아 자주 드나들면서 나만의 동유럽 골목 여행을 즐깁니다. 하지만 지난 몇 주간은 출장이 잦아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이 친구가 운영하는 와인바를 찾습니다.
이 와인바는 주로 프랑스와 슬로바키아 와인을 주로 취급하는데, 병당 가격이 20~40유로 그러니까 원화로 하면 2만5천원 ~ 6만원이니 친구 2~3명과 함께해도 좋은 분위기 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안주문화가 아닌지라 약간의 치즈와 비스킷 정도만 있어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여행온 기분으로 방문하면 좋지요.
진짜 동유럽 도시인 이곳은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닌지라 특별히 붐비지 않으며 특히 다운타운은 언제나 차분합니다. 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나라인지라, 한국 사람들로부터 슬로베니아 혹은 체코슬로바키아가 아니냐는 말로 도리어 질문을 받곤 하지만, 이곳은 슬로바키아이며 수도는 브라티슬라바입니다.

이곳에 오려면 보통 비엔나 혹은 브라티슬라바 기차역에서 오게 되는데, 오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비엔나에서 올 경우 보통 버스로 오게 되는데, Novy Most 역에서 내린 후 찾길을 건너면 보이는 커다란 성당을 찾으면 됩니다. 이성당은 마틴대성당(Martin Ch.)라고 하며 한국으로 치면 명동성당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혹은, 부다페스트나 프라하에서 온다면 보통 중앙기차역에서 내리게 되는데, 이때는 걸어서 오는게 편합니다. 구글맵에 Michalská 390/22, 811 03 Staré Mesto 혹은 좌표(48.145188, 17.106741)를 찍고 오면 도보로 15분 소요되니 천천히 주변 구경을 하면서 오면 됩니다.
골목에 접어들면 가끔은 미로가 되어버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방향을 잃기도 하는 그런 골목이다. 바닥은 한 400년쯤 된 돌로 만든 마차길 같은데, 비라도 살짝 내리면 그 돌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왠지 마법사가 들고 다닐 법한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서 혹은 다른 유럽, 동유럽에서 손님이 오면 나는 꼭 이 와인바를 데려가는데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만나는 골목들과 바닥길, 가로등들이 잠시나마 우리를 동화 속으로, 과거 속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죠.

또한 이 골목에는 자그마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수줍게 골목 구석구석 숨어있는 중세무기박물관, 현대미술관 그리고 오래된 책방이 찾집을 운영하는 북카페 등을 찾는 것도 묘미인데 또한 주말이 되면 지방에서 브라티슬라바 구경을 온 학생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작고 볼 것 없는 도시이지만, 여름이 되면 이곳도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비록 유명 관광도시의 몇 십 분의 일 수준이지만, 나름 깃발을 들고 있는 가이드를 따라 십여 명의 이방인들이 줄지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곳의 역사를 느끼죠.

동유럽 다운타운 골목여행의 핵심은 어둑해진 밤거리에 있습니다. 가장 중심부인 칼튼호텔과 구 오페라하우스 사이의 지점으로부터 천천히 외곽으로 빠진 다음, 천천히 달팽이 모양으로 중심부를 향해 산책하다 보면, 이 동유럽 골목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빠질 것입니다. 다른 유럽의 유명 다운타운과는 달리, 골목이 많고, 반대로 사람이 없어 한적한 느낌이 나면서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대접 받을 수 있고, 바가지요금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겨울이 되면 분위기는 바뀝니다.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기운까지 도는 다운타운. 3시가 지나면 금세 어두컴컴해지며, 여름철의 나른함조차 전혀 없습니다. 카페나 레스토랑의 문틈으로 간간이 새어 나오는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더더욱 썰렁하게 만드는데, 눈 내리는 밤이라면 당장이라도 '성냥팔이 소녀'가 앞치마를 두른 채로 저 앞을 걸어가고 있을 듯한 착각도 듭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배경이 브라티슬라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 위에 외롭게 매달려 있는 가로등도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가로등 같은데, 별이 너무나 작아서 하루가 1분인 별. 그래서 어린왕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수없이 가로등 불을 끄고 켜기를 반복했던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이 동유럽 골목 어딘가에 어린왕자와 가로등지기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동유럽 골목 여행 한번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동유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외 취업 현지채용 동유럽이야기 첫번째 (12) | 2020.10.06 |
---|
댓글